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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장의 인사이트] 김상유 작가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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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시2026-05-22 12:10:45

김상유 작가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전시 리뷰

: "예술은 외로움을 품을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건넨다."

- 주송현(반포잠원교육지원센터장)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향합니다.

 

우리는 빛의 결, 색의 온도, 형태의 균형,

움직임의 리듬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끌림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취향이나 장식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고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데

필요한 근원적 경험입니다.

 

 

인류학자인 엘렌 디사나야케(Dissanayake, Ellen)

미학적 인간(Homo Aestheticus: Where Art Comes From and Why)』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을 호모 에스테티쿠스(미적 인간)'으로 정의하며, 

예술의 본질을 일상의 어떤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기(making special)’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평범한 사물과 흘려보내던 시간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최근 신경미학 관련 연구들 역시

아름다움이 인간의 뇌와 감정 체계에 깊이 관여함을 증명합니다.

 

 

이시즈와 제키(Ishizu, Tomohiro & Zeki, Semir)의 

Toward A Brain-Based Theory of Beauty」연구

회화와 음악처럼 서로 다른 감각 자극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의 경험이

뇌 안에서 공통된 반응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본 실험입니다

 

연구진은 21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fMRI 실험을 진행했고,

피험자들은 회화 이미지와 음악을 감상한 뒤 각 자극을 아름다운’, ‘무관심한’, ‘추한정도로 평가했습니다.

 

 

 

 

실험 결과, 아름답다고 평가된 회화와 음악을 경험할 때 공통적으로 내측 전두엽 피질(mOFC)이 활성화되었고,

그 활성화 정도는 미적 감응의 강도와 비례했습니다.

 

이는 미적 경험이 개별 감각을 넘어 뇌 안에서 정서적·보상적 가치와 연결되어 처리됨을 시사합니다. 

 

세계보건기구 또한 예술 참여가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웰빙에

의미한 역할을 한다는 종합 리뷰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Fancourt, Daisy & Finn, Saoirse. What is the evidence on the role of the arts in improving health and well-being?

A scoping review. WHO Regional Office for Europe, 2019).

 

 

그러나 저는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앞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인간은 왜 힘들 때 아름다운 것을 찾을까요?

왜 어떤 그림 앞에서는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게 되고,

색과 선과 여백은 때때로 사람의 말보다 깊은 위로가 될까요?"

 

 

 

현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상유 작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동판화·목판화·유화 등 150점 이상의 작품과

작가가 사용한 도구, 기록 자료를 함께 선보이며, 

그가 반세기에 걸쳐 구축해온 예술세계와 삶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전시를 보는 동안 저는 아름다움이 주는 위로의 힘,
그리고 평생을 바쳐 정성껏 일구어낸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어떻게 타인의 마음에 닿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김상유의 작품 앞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 감정은

'맑은 고요였습니다.

 

 

그것은 텅 비어 쓸쓸한 고요가 아니라,

자기 내면을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숙연함이었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인물, 시처럼 놓인 문장,

절제된 색과 넓은 여백은

관람자를 조용히 멈춰 세웁니다.

 

 

그 고요를 깊이 응시하다보니,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닌

‘외로움’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만으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감정입니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따뜻한 말들로 위로받아도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층위가 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을 줄이는 길은

타인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상유, No Exit 막혀버린 출구, 종이에 에칭(동판화), 1970.

 

 

김상유의 초기 동판화 작업에서는

흑백의 조화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섬세하고 치열하게 새겨진 선들은

단순한 판화 기법의 결과물이 아니라,

녹내장으로 실명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끝내 예술의 본질에 닿고자 했던 작가의 집요한 예술정신을 보여줍니다.

 

 

 

반면 목판화에서는 또 다른 온도가 느껴집니다.

담백하게 놓인 조형들, 한지 위에 스며든 붉은 기운과

짙은 먹빛의 대비는

작가의 곧은 성정과 절제된 태도를 드러냅니다.

 

특히 제 마음을 오래 붙잡은 것은

전시장에 놓인 동판과 목판 원본들이었습니다.

칼이 지나간 자리와 손의 압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원본에서

더 직접적인 생의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술은 프레임에 담긴 결과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버티고 새기고 견뎌낸 노동의 흔적으로도

관람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이후 유화로 넘어가서도 김상유의 작업은

일관되게 맑고 고요합니다.

 

화면은 허정한 비움을 품고 있지만,

그 비움은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워져 있기 때문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사색과 명상의 공간이 됩니다.

 

그는 동판화, 목판화, 유화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했고,

한국 현대 판화의 중요한 흐름을 만든 작가로 평가됩니다.


특히 동판화와 서예적 회화 언어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 안에서 

독자적인 사유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Mark Rothko, Blue and grey, 1962
 

저는 김상유의 그림 앞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떠올렸습니다.

 

로스코가 압도적인 색면을 통해

인간 내면의 비극과 숭고라는 심연으로

관람자를 끌어당긴다면,

김상유는 고요한 인물과 절제된 선면의 질서를 통해

삶의 무게를 조용히 받아냅니다. 

 

전시 제목인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더욱 오래 남습니다.

 

쉽게 닳지 않는다는 것은

상처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수없이 마모되고 흔들렸음에도

자기 안의 결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입체주의 화가 조르주 브라크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술의 위로는 즉각적이지 않지만,

인생의 좌표를 세우는 질문들을 건넵니다. 

 

 

그 삶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었는가.”

나는 무엇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무엇에 의해 깎이고, 무엇을 남겼는가.”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술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작품 앞에 멈춰 서서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고 품어내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에 치여 감정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사치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예술을 통해 내면의 자아와 만나는 경험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쪽에는 나태주 시인이 다녀간 뒤 남긴

「풀꽃」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한 문장이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놀라운 옛날을 만나고 갑니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바로 이 문장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지나간 시간을 낡은 것으로 버려두지 않고,

오래된 삶을 다시 놀라운 세계로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

미처 돌보지 못한 마음,

견디느라 지나쳐온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10대에는 예술을 전공하는 일이 고달팠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20대에는 대학 졸업 이후의 막막한 현실 속에서

늦은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30대에는 먹고사는 일이 바빠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연봉을 가진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고,

제 전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0대를 지나며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제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왔는지를 말입니다.

 

앞으로의 삶은 나태주 시인처럼,

한 단어와 한 문장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하는

향기로운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평생 예술 안에서 살아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시의 끝에서 마주한 김상유의 작품

일락정(日樂亭)

매일의 삶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을 뜻합니다.

 

그 제목 앞에서 저는 반포잠원교육지원센터를 떠올렸습니다

입시와 경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잠시라도 예술 속에서

자기 안의 단단한 무늬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저희 센터가 서초구 아이들에게 그런 ‘일락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결국 예술은 외로움을 없애주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전 누군가의 생애를 스쳐 간 외로움이

그림 안에 하나의 흔적으로 머물러 있음을 알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깊은 위로를 받습니다.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는 내면의 고요를 기르고,

쉽게 닳지 않는 마음을 빚어가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일구어 온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고요한 여백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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